손성민 대표 | 윈게이트코리아㈜
2026년 글로벌 화장품 규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새로운 제도가 대거 등장한 해라기보다는 지난 몇 년간 만들어진 규제가 실제 시장에서 시행되기 시작한 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EU의 원료 규제 강화, 미국의 MoCRA, 중국의 CSAR 이후 안전성평가 제도, 한국의 화장품 안전성평가 법제화처럼 큰 방향을 정하는 변화들이 연이어 발표됐다면, 2026년에는 이들 제도의 전환기간이 종료되고 기업의 실제 의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EU에서는 4-MBC의 시장 철수기한과 확대된 향료 알러젠 표시기준의 적용시점이 도래했고, 영국은 EU와 다른 독자적인 원료규제를 실제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MoCRA에 따른 시설등록의 첫 본격적인 갱신주기가 돌아왔고, FDA의 기록접근권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중국은 화장품 전자라벨 시범과 함께 신화학물질 환경관리 절차까지 변화시키면서 화장품 규제와 화학물질 규제를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시장으로 한층 복잡해졌다. 일본에서는 New Approach Methodologies, 즉 NAMs를 활용한 안전성평가 방법론의 규제과학화가 가속되고 있으며, ASEAN에서도 과거 결정된 성분규제의 실제 시장 철수기한이 2026년에 도래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5년 말 화장품법 개정으로 법적 기반이 마련된 안전성평가 제도는 2026년에 들어 식약처 가이드라인과 하위법령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26년은 한국 화장품 산업에서도 2028년을 준비하는 단순한 ‘대기기간’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와 조직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해야 하는 첫 실행연도라는 의미가 있다.
EU, ‘새로운 규정’보다 중요한 것은 2026년에 끝난 전환기간이다 EU는 오랫동안 글로벌 화장품 안전규제의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26년 EU 규제의 의미를 단순히 새로운 SCCS Opinion이나 Annex 개정이 많았던 해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제품을 실제로 변경하거나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시점이 여러 건 동시에 도래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4-Methylbenzylidene Camphor, 즉 4-MBC다. Regulation (EU) 2024/996에 따라 2025년 5월 1일부터 4-MBC를 함유한 제품을 EU 시장에 새롭게 출시하는 것이 금지됐고, 2026년 5월 1일부터는 이미 시장에 출시된 기존 제품도 더 이상 제공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2026년 5월은 단순히 앞으로의 신제품 처방에서 4-MBC를 제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기존 유통재고까지 정리해야 하는 최종 유통 종료 시점이었다. 2026년 1월 채택된 Regulation (EU) 2026/78 역시 CLP에서 새롭게 또는 변경된 CMR 물질들을 화장품 규제 물질 목록(Cosmetics Regulation Annex)에 반영하면서 5월부터 실제 적용에 들어갔다. 이어 4월에는 Regulation (EU) 2026/909가 채택되어 Benzyl Salicylate, Triphenyl Phosphate, Citral, DHHB를 비롯해 aluminium, 수용성 zinc salts, Acetylated Vetiver Oil 및 일부 염모제와 방부제의 조건이 조정됐다. 이러한 변화는 EU의 화장품 원료규제가 개별적인 개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CLP의 유해성 분류와 SCCS의 과학적 검토, 그리고 Cosmetics Regulation Annex 개정이 하나의 연속적인 규제 사이클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료 알러젠 물질 표시 확대는 2026년 EU 시장에서 기업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변화 중 하나다. Regulation (EU) 2023/1545에 따른 새로운 표시요건에 적합하지 않은 화장품은 2026년 7월 31일 이후 새롭게 EU 시장에 출시할 수 없다. 그 이전에 적법하게 시장에 출시된 제품은 2028년 7월 31일까지 유통할 수 있지만, 2026년 하반기부터 생산·출시되는 제품에서는 이미 새로운 기준에 맞춘 대응이 필요하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전성분표에 몇 개의 알러젠 명칭을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다. 향료 공급업체로부터 세부적인 알러젠 선언서를 받아야 하고, 완제품 처방에서 해당 성분의 실제 농도를 계산해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아트워크와 안전성 평가보고서까지 수정해야 한다. 결국 2026년부터는 향료 공급망에서 어느 수준의 조성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완제품의 EU 시장 적합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됐다. 여기에 PPWR의 적용 개시까지 겹쳤다. Regulation (EU) 2025/40에 따른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은 2026년 8월 12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재활용성이나 재생원료 비율 등 주요 의무의 상당수는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되지만, 2026년은 화장품 포장규제가 기존 지침서를 기반으로 한 국가별 권고성 이행법 중심에서 EU 통합 규정으로의 강제적 법규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결과 EU 화장품 규제는 더 이상 ‘제품 내용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제품의 처방과 원료 안전성은 PIF와 CPSR(안전성 평가 보고서)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포장 최소화, 재활용성, EPR, 표시 등 포장규제까지 별도의 규정 대응을 해야 한다. 결국 하나의 SKU에 대해 성분규제, 안전성평가, 향료 표시, 포장규제를 서로 별개의 업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변화-대응 구조 안에서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영국, 2026년부터 EU와의 규정 차이 가속화 브렉시트 이후에도 많은 기업은 여전히 EU와 영국을 하나의 규제권역처럼 관리한다. 실제로 PIF와 CPSR을 구성하는 과학적 데이터는 상당 부분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어느 정도 효율적이다. 그러나 2026년 규제 변화는 ‘과학적 데이터의 공유’와 ‘법적 규정의 동일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보여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국,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독자적으로 수정된 GB Cosmetics Regulation을 적용한다. 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Windsor Framework에 따라 EU 화장품 규정의 영향을 계속 받는다. 이제는 ‘UK’라는 하나의 단위만으로 제품 적합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다. 영국에서는 SI 2026 No. 23에 따라 4-MBC가 금지원료로 전환되고 자외선 필터 목록에서 삭제됐으며, formaldehyde-releasing 보존제의 경고표시 기준도 기존 0.05%에서 0.001%로 크게 강화됐다. 추가적인 CMR 금지도 2026년 8월부터 적용됐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EU와 동일한 성분을 제한하더라도 적용일과 전환기한, 법적 근거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EU·UK 대응은 하나의 공통 과학 기반 기조를 유지하면서, 원료 제한, 전환 기간, 등록, RP, 라벨링 등은 별도의 법적 대응 줄기로 관리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즉 EU에서 적법하다는 사실만으로 영구 규정의 적법성을 자동 판단하는 방식은 2026년 이후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미국, MoCRA의 관심사는 ‘등록했는가’에서 ‘계속 관리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미국에서 MoCRA가 처음 시행될 당시 업계의 관심은 시설등록과 제품 리스팅(Listing)에 집중됐다. 그러나 2026년에는 제도의 무게중심이 달라졌다. 2024년 전후 대규모로 진행된 제조시설 등록의 2년 주기 갱신시점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기업은 등록번호를 한 번 확보해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등록 상태와 갱신일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FDA가 2026년 2월 Cosmetics Direct에서 등록 상태와 갱신일을 표시하고 갱신 알림 기능을 추가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MoCRA는 이제 단발성 등록제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규제 대응의 성격을 갖게 됐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FDA의 기록접근권이다. FDA는 2026년 1월 화장품에 관한 기록접근권을 설명하는 지침서(안)을 발표하면서 부작용 발생 및 안전성과 관련된 기록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상황과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미국의 안전성 입증(Safety Substantiation)을 단순한 내부 참고자료 정도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다. 미국은 EU처럼 특정 CPSR 형식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품이 왜 안전하다고 판단되었는지, 어떤 독성학적 근거자료를 사용했는지, 해당 사용농도에서의 안전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새로운 이상사례가 발생했을 때 기존 안전성 결론을 어떻게 재검토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자유로운 형식은 낮은 기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과학 논거와 문서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사실상 국내의 대다수의 기업들이 통합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026년 미국 규제의 핵심은 제조시설 등록이나 제품 리스팅 그 자체보다 등록 유지, 안전성 입증, 부작용 발생 관리, 실사 대응 기록 관리 를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2026년부터는 NMPA 규정만 대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가장 빠르게 화장품 규제의 구조를 바꾼 시장 중 하나다. CSAR 이후 제품등록·비안, 신원료 관리, 효능평가, 안전성평가 등이 잇따라 정비됐지만, 2026년에는 이러한 제도가 보다 실제적인 데이터 관리와 과학적 평가 체계로 이동하는 변화가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자라벨 시범사업이다. NMPA는 2026년 2월부터 베이징, 상하이, 저장, 산둥, 광둥, 충칭에서 화장품 전자라벨 시범을 시작했다. 전자라벨은 단순히 QR코드를 활용한 소비자 마케팅이 아니라, 중국어 법정표시 정보를 제공하는 규제수단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등록·비안 정보와 전자적으로 제공되는 제품정보의 일치성, 시스템의 추적성과 데이터 관리가 앞으로 더 중요한 규제요소가 될 수 있다. 안전성평가 역시 단순히 ‘전체 버전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차원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국 규제당국은 원료안전정보의 활용, 동물시험 의존도 감소, NAMs, read-across, TTC 등 보다 다양한 평가방법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특히 식물추출물, 발효원료, 복합원료처럼 전통적인 독성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원료에서 중요하다. 앞으로 중국 안전성평가는 특정 독성시험 성적서가 존재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원료의 정체성와 실제 사용농도, 노출, 각 독성 종말점별 자료의 존재 여부와 데이터갭(Date Gap), 그리고 그 부족한 자료를 어떤 과학적 근거로 보완했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2026년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화장품 원료와 중국의 신화학물질 환경관리, 흔히 실무에서 China-REACH라고 부르는 영역의 연결이다. 완제품 화장품이 화학물질 등록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모든 화장품 원료까지 자동적으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신개발 화장품 원료나 중간체가 중국 기존화학물질목록인 IECSC에 등재되지 않은 신화학물질이라면 MEE의 별도 규제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더욱이 2026년 8월부터 기존의 신화학물질 환경관리 ‘비안(?案)’ 접수가 중단되고 관련 신청·심사 구조가 변경되면서, 새로운 펩타이드나 합성물질, 바이오 기반 신원료를 중국에 공급하려는 기업은 NMPA와 MEE를 별도의 규제 대응을 검토하고 전략을 수정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다시 말해 “NMPA에서 화장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가”와 “MEE의 화학물질 규제상 중국에서 생산·수입할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일본, 안전성평가 의무화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방법 자체의 변화다 일본의 2026년 변화를 설명할 때에는 EU나 한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일본에서 모든 화장품에 EU식 안전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안전성평가 보고서가 전면 의무화됐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안전성평가의 중요성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일본의 변화는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안전성을 판단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6년 7월 도쿄에서 개최된 ICCR-20에서는 Safety Assessment Joint Working Group이 NAMs를 활용한 피부감작성 평가 사례를 논의했다. 일본 PMDA 역시 피부감작성에서 Defined Approach를 활용하는 방법을 비롯해 피부자극, 광안전성, 단회투여독성 등 여러 종말점에서 동물대체시험과 통합적 평가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하나의 시험결과를 가지고 안전 여부를 판단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in chemico, in vitro, in silico, read-across, 기존 독성자료와 인체 데이터를 함께 활용하는 WoE(weight-of-evidence) 접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화장품 기업의 입장에서도 일본 전용 시험자료를 별도로 만드는 것보다 OECD, ICCR, EU 등과 호환되는 글로벌 독성 데이터 패키지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2026년은 2028년 안전성평가의 ‘설계도’가 공개된 해다 한국 화장품 산업에서 2026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단연 안전성평가 제도의 구체화다. 2025년 말 화장품법 개정으로 제품별 안전성평가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기업이 실제 준비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2026년에 들어 본격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식약처는 2026년 6월 「화장품 안전성 평가 자료 작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보고서의 구성과 각 항목별 작성원칙, 국내외 안전성자료의 활용방법 등을 구체화했다. 이어 7월에는 안전성평가 제외대상, 평가자 자격기준 등을 포함한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시점부터 기업들은 더 이상 제도 도입 여부를 지켜보는 단계에 머물 수 없게 됐다. 안전성평가는 보고서 양식을 작성하는 작업과 동일하지 않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제품의 정량처방과 사용방법, 노출량, 원료별 독성정보, 안정성, 미생물 품질, 보존력, 포장 적합성, 이상사례 정보 등을 하나의 논리 안에서 연결하는 것이다. 특히 식물추출물, 발효원료, 향료, 펩타이드, 복합원료처럼 단순한 SDS나 COA만으로 안전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원료에서는 자료 확보 자체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실제 평가 세부 기준, 독성 자료 구비 의무화 등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많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2027년 말에 대상 제품을 정한 뒤 보고서를 일괄적으로 작성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준비의 핵심은 보고서 작성 이전에 어떤 데이터가 있고 어떤 데이터가 없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기존 제품 처방들이 새로운 안전성 평가 기준에 처방 변경이 필요한지, 사용 원료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 추가 서류/자료는 어떤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하는지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
2028년 1월 1일, 신규 기능성화장품만 준비하면 되는가 한국의 안전성평가 제도에서 산업계가 특히 주의해서 볼 부분이 2028년 1월 1일의 첫 번째 적용단계다. 법은 사업자의 규모와 등록시점, 기능성화장품의 심사·보고 여부 등에 따라 적용시점을 단계화하고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화장품책임판매업자에 대해서는 기능성화장품과 관련된 안전성평가 의무가 2028년 1월 1일부터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이후 2030년과 2031년에 범위가 확대되는 구조다. 이때 2028년부터 적용되는 제품을 단순히 ‘2028년에 새롭게 출시되는 기능성화장품’으로 이해하면 실제 준비범위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 공포 후인 2026년 또는 2027년에 기능성화장품 심사나 보고를 완료하고 시장에 출시한 제품은 2028년 시점에서는 이미 판매 중인 기존제품이 된다. 그러나 해당 책임판매업자가 2028년 적용요건에 해당하고 그 제품을 계속 제조·수입·판매하려는 경우라면 해당 제품 역시 안전성평가 체계 안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2028년의 신제품’이 아니라 2028년 이후에도 운영할 기능성화장품 포트폴리오라고 보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 안전성평가를 국내용 문서로만 만들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국의 안전성평가 제도가 기업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가능성은 분명하다. 수백 개의 SKU를 운영하는 기업이 원료별 독성정보와 제품별 노출평가 자료를 단기간에 구축하려 한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번 제도는 한국 화장품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위한 안전성데이터패키지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U와 영국의 안전성평가/PIF, 중국의 안전성평가, ASEAN의 안전성평가/PIF, 미국의 안전성 입증,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전성평가는 서로 동일한 문서가 아니다. 각 제도는 요구형식과 법적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활용되는 핵심 데이터는 상당 부분 공통된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국가별로 보고서를 별도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그 보고서를 구성하는 원료 및 제품의 시험자료를 기업의 공통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료의 INCI, CAS, 조성, 제조공정, 규격과 불순물 프로파일을 한 번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피부·안구자극, 피부감작성, 유전독성, 반복투여독성, 생식·발생독성 등의 종말점을 신뢰도와 출처까지 포함해 구조화해 둔다면 이 자료는 EU의 안전성평가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한국의 안전성평가, ASEAN PIF, 미국 안전성 입증 자료에서도 시장별 요구사항에 맞게 재구성해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논리는 완제품에도 적용된다. 제품의 정량처방, 사용량과 빈도, 사용부위, 대상 소비자, 안정성, 미생물 품질, 보존력 시험, 포장 적합성, 효능·표시광고 근거, 시판 후 안전성 정보 등을 하나의 제품 안전성 자료체계로 관리한다면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수집할 필요가 줄어든다.
국가별 개별 대응에서 ‘글로벌 안전성 관리체계’로 2026년의 규제 변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면 공통점은 분명하다. 글로벌 화장품 규제의 중심이 ‘등록번호를 취득하는 것’에서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안전성과 규제준수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EU는 성분 제한과 향료 알레르기 유발성분 표시, PPWR을 통해 처방과 라벨, 포장, 재고관리를 하나의 제품 생애주기 안에서 연결하고 있다. 영국은 EU와 다른 규제 적용 일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미국은 MoCRA의 갱신과 FDA의 기록접근권을 통해 일회성 신고 중심의 관리에서 지속적인 규제관리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완제품에 대한 NMPA 규제뿐 아니라 원료에 대한 MEE 화학물질 관리까지 검토해야 하며, 일본은 신접근방법론(NAMs)과 정의된 접근법(Defined Approach)을 안전성평가를 위한 실제 규제과학의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ASEAN 역시 공통된 ACD 기준을 각 국가의 시행시점과 행정절차에 맞추어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이 계속해서 ‘EU 자료’, ‘중국 자료’, ‘미국 자료’, ‘한국 자료’를 각각 별도로 관리한다면 국가가 늘어날수록 업무량과 비용 역시 거의 비례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필요한 방식은 오히려 그 반대다. 동일한 원료와 동일한 제품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하나의 기준 데이터로 통합 관리하고, 각 국가의 법적 요건에 따라 필요한 규제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글로벌 안전성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규제업무 부서만 움직여서는 충분하지 않다. 연구개발, 품질보증, 원료구매, OEM·ODM, 브랜드사가 동일한 제품 및 원료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 원료나 처방이 변경됐을 때 어느 시장의 안전성평가, 라벨, 제품 신고, 포장 요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2028년 안전성평가 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준비가 늦은 기업에게는 수백 개 제품의 원료자료를 한꺼번에 다시 수집해야 하는 새로운 규제비용이 될 수 있다. 반면 2026년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춰 데이터를 구축하는 기업에게는 국내 제도 대응 과정에서 확보한 원료 안전성 데이터와 제품평가 결과가 EU, 영국, 중국, ASEAN, 미국 시장에서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규제 자산이 될 수 있다.
맺음말 2026년 글로벌 화장품 규제의 특징은 하나의 대규모 신규 법령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세계 각국에서 마련된 제도들이 비슷한 시기에 실제 운영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U에서는 성분규제의 전환기한과 향료 알레르기 유발성분 표시, PPWR이 동시에 실제 적용단계로 들어갔고, 영국은 EU와 다른 독자적인 원료규제 일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MoCRA가 단순 등록의 문제에서 갱신과 기록관리의 문제로 전환됐으며, 중국은 화장품 안전성평가와 신화학물질 환경관리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NAMs가 실제 규제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으며, ASEAN은 조화된 규제체계의 변경사항을 각국의 시장 철수시점과 행정절차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26년은 안전성평가 제도가 선언적 수준을 넘어 실제 준비단계로 들어선 해다. 특히 2028년 첫 적용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2028년에 출시할 신제품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2026년과 2027년에 심사·보고되어 2028년 이후에도 계속 판매할 기능성화장품 포트폴리오까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모든 기존 제품이 2028년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사업자와 제품별 법적 적용시점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결국 앞으로 글로벌 화장품 규제 경쟁력은 어느 기업이 더 많은 국가의 등록절차를 알고 있느냐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품이 왜 안전한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 판단에 사용한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관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데이터를 여러 국가의 규제체계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2028년 안전성평가 제도는 단순히 국내 규제가 하나 더 늘어나는 사건으로 볼 필요가 없다. 제대로 준비한다면 국내 안전성평가를 출발점으로 EU의 CPSR/PIF, 중국의 안전성평가, ASEAN PIF, 미국의 안전성 입증자료(Safety Substantiation)까지 연결되는 글로벌 규제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6년은 새로운 규정을 지켜보는 해가 아니라, 화장품 기업이 규제를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해야 하는 해다.